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자베스 1세 (문단 편집) === 기타 === [[프랜시스 베이컨]]이 엘리자베스 1세의 숨겨진 사생아고, 베이컨이 때로는 [[윌리엄 셰익스피어]]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는 [[http://helmut_lang.blog.me/150037288740|주장]]이 있지만,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설을 부정하고 있다.[* 이 링크는 말 그대로 '설'을 사실로 단정하는 듯한 말투이기 때문에 걸러서 볼 필요가 있으니 주의.] 엘리자베스 1세가 사실 가짜라는 주장이 있다. 음모론의 주요 근거는 1. 집사와 유모가 사라진 점, 2. 뒤바뀐 필체, 3. 갑자기 완치된 충치 등등. 2015년 3월 8일 자 [[신비한 TV 서프라이즈]]에서 [[http://tvdaily.asiae.co.kr/read.php3?aid=1425782680864226019|다뤘다]]. 나아가 뒤바뀐 엘리자베스 1세가 남자라는 [[http://legacysunfoldingjourney.blogspot.kr/2013/05/queenelizabeth-i-and-legend-of-bisley.html|주장]]도 있다. 위 기사의 내용 중 비슬리에서 매년 5월에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고 있다고 나오는데, 이 [[https://traditionalcustomsandceremonies.wordpress.com/2014/05/31/custom-survived-bisley-ascension-day-well-dressing/|축제]]는 바로 남자아이를 [[여장]]시키는 것이라고. 소설 '[[드라큘라]]'로 유명한 작가인 [[브램 스토커|브램 스토커(Bram Stoker)]]가 이것을 소재로 1910년에 소설인 '희대의 사기극(Famous Impostors)'을 내놓았다. 이것 뿐만 아니라 역사 추리 소설가 스티브 베리가 쓴 소설인 [[http://trier.tistory.com/138|The King's Deception]]에서도 다루었다. 물론 이 설도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.[* 당장에 [[드라큘라]]의 [[드라큘라 백작]]과 실존 모델 [[블라드 3세]]의 실제 역사 속 행적도 많이 다르다.] 엘리자베스 1세가 [[안드로겐 불응 증후군]] 환자 내지 [[인터섹스]]라는 [[http://www.ncbi.nlm.nih.gov/pubmed/3900653|주장]]도 있다. 그 이유로는 위의 성격 항목에서 보듯이 그녀가 보통 여자와는 다르게 매우 활발하고 승마와 사냥 등 남성적인 취미를 즐겼고 위 유전병의 보편적인 신체적 특징 중 하나인 가늘고 큰 손을 가졌다는 이유가 있다. 게다가 이런 유전병 때문에 일평생 [[독신]]으로 살았다고 한다고 한다. [[미국]]의 작가인 폴 임이라는 사람이 쓴 책인 책 속의 책에 의하면, [[잉글랜드]]에서 이역만리 떨어져있는 [[무굴 제국]]과의 교류를 추진한 바 있었다고 한다. 물론, 당시는 [[대항해시대]] 시기라서 [[인도]]나 [[아메리카]], [[동남아시아]], [[동북아시아]]로의 무역이 각광받던 시점이라서 딱히 특이한 건 아니지만, 엘리자베스 1세는 단순히 무역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 직접 무굴 황실과 우호관계를 맺으려 한 것이므로, 당대 기준으로도 꽤 대담한 시도였다. 실제로 당시 황제인 [[악바르]]도 잉글랜드를 포함한 [[유럽]] 국가에 대한 관심이 커서 엘리자베스 1세에게 친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, 동서양 국가의 군주들끼리의 흔치않은 직접적인 교류가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이었지만, 이후의 [[무굴 제국]]과의 관계가 우호적 교류가 아니라 [[영국 동인도 회사령 인도|무력을]] [[영국령 인도 제국|동반한]] [[세포이 항쟁|침략으로 이어졌다는 점]]에서 두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, [[현실은 시궁창|일이 잘 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]]. 언변 능력이 뛰어나고 담력 또한 두둑했기에 여러 장소에서 연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. 1588년 8월 9일 틸버리 항구에 집결한 잉글랜드 육군을 상대로 한 [[틸버리 연설]]과 1601년 11월 30일 의회에서 행한 '황금의 연설(The golden speech)'이 대표적인 연설이다. 아버지 헨리 8세, 언니 메리 1세와 함께 한국사의 [[숙종(조선)|숙종]]과 그 후손들에 비유될 때도 종종 있다. 헨리 8세는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유능한 군주의 면모, 자주 벌였던 숙청, 다혈질 성미와 여성 편력 등이 비슷했던 숙종에, 메리는 잠시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으나 곧 박대당한 유년기, 짧은 재위기간과 결국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는 점이 비슷한 [[경종(조선)|경종]]에 비교된다. 그리고 엘리자베스에 비교되는 왕은 바로 [[영조]]. 어머니가 지배계급 출신이 아니었고, 아버지 사후 이복형/이복언니가 왕위에 오르자 역모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형/언니가 죽이지 않아 목숨은 살 수 있었으며 이후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점이 비슷하다. 또한 아버지를 닮아 성미가 까다롭고 불같으면서도 백성들에게는 소탈했으며, 개인적으로 박식했고 장수하며 오랫동안 왕위를 지킨 것도 공통점이다. 거기다 기묘하게도 엘리자베스는 오촌 조카 [[메리 1세(스코틀랜드)|메리 스튜어트]], 영조는 아들 [[사도세자]]라는 당시 왕위 계승 서열이 가장 가까웠던 혈육을 결국 죽여야 했지만, 죽을 때는 그들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도 공통점이다.[* 엘리자베스의 손자뻘인 [[제임스 1세]]와 영조의 손자 [[정조(조선)|정조]]도 어릴 때부터 정치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생을 좀 했으며 즉위한 후 여러 파벌의 신하들 사이를 조정해 가며 통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